Koo Sung Soo

Photogenic Drawing

May 10 - May 23, 2010

박여숙화랑은 오는 6월 27일부터 극사실주의 작가 7명으로 이루어진 《Photogenic Drawing plants》전을 개최한다. 현대성과 기술적 완벽성을 추구해 온 사진가 구성수, 다양해진 현대 미술만큼이나 그의 관심사는 한마디로 규정짓기에는 방대하고 다양하다. 그가 굳이 사진의 초창기인 19세기 초의 사진술을 일컫는 ‘포토제닉 드로잉’이라는 회고적 취향의 제목을 이번 전시에 붙인 까닭은 무엇일까?

작가는, 자신의 작품과 태도가 예전과 달라진 까닭을 ‘예술 사진’이라는 개념에서 찾는다고 했다. 예술이 자기 표현이라고 할 때, 사진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스스로의 질문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포토제닉 드로잉(Photogenic Drawing)은 빛에 반응하여 그려진 그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명칭이며, 1839년 다게레오 타입(Daguerro-Type)이 최초의 사진술로 인정받은 그 해 영국의 과학이자 식물학자였던 윌리암 헨리 폭스 탈보트(William Henry Fox Talbot, 1800-1877)가 붓이나 연필이 아닌 빛을 이용하여 사물의 형상을 종이 위에 재현한 이미지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작가가 자신의 ‘냉담함’을 섞어 만든 또 다른 포토제닉 드로잉에는, 사진술이란 애초에 탈보트가 품었던 대상을 재현하겠다는 과거의 회화적 욕망의 성취물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유일한 기계적 이미지일 따름이라는 관점이 투영되어 있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 같이 선보인 《현대 하이스코》시리즈를 보자. 철강 냉연 공장을 찍은 이 작품들은 요셉 슐츠와 같은 기계미학의 관점이 깃든 작품들로서 설비와 기계의 이미지를 마치 그림을 그리듯 카메라를 조작하여 찍은 것이다. 각각의 작품들은 언뜻 보면 산뜻한 컬러의 회화 작품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자동 로봇이 용접이나 회전 등 지극히 기계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장면들이다. 기계가 장면을 만들기도 하지만, 작가 본인이 이 기계와 설비들을 거대한 팔레트로 인식하고 기계적 드로잉을 한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온다.

 

또, 작가의 신작 《plants》시리즈는 각각 21개씩의 작품들로 이루어진 두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한 그룹의 작품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액체 속에 담긴 식물의 표본처럼 보인다. 실제로 뿌리까지 잘 세척한 식물을 투명한 유리 두 장 사이에 조형적으로 배치하고 뷰 박스에 올려 촬영한 사진이다. 다른 그룹의 작품들은 찰흙에 식물을 유리판으로 눌러 식물의 형태로 음각을 만들고, 그 위에 백시멘트를 부어 굳혀 만든 양각 위에 채색하여 다시 사진을 찍었다.

 

작가는 지금껏 스트레이트한 사진 작업을 해 왔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다소 복잡한 제작 방법의 작품을 선보인 것일까? 이는 작가가 사진적 드로잉을 실천하는 방법을 고민한 흔적의 단서가 된다. 작가의 사진적 드로잉은 걸어 다니며 찍는 이른바 근대 사진의 스냅사진 방법론이나 피사체를 구성하여 비현실적 이미지를 만드는 현대 사진의 적극적 태도와는 다르다. 예술가로서의 최소한의 태도와 기초적 조형 표현을 실천하려는 고민과 노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작가의 이러한 조형 의식은 그의 전작들에서도 이미 드러난다. 시간과 사진의 관계성에 주목하여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 《한알고등학교》시리즈도 그렇고, 미국 폴 게티 뮤지엄(The Getty Museum)에 소장된 8점의 시리즈《서른 살 아내》 또한, 유럽의 유형학적 사진과 미국의 포스트모던 사진의 형식을 믹서에 넣고 갈아 만든 작가의 조형 의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의《plants》시리즈가 회화, 조각, 사진이라는 각기 다른 미술 장르들을 종합 활용한 작품이라는 점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 지금껏 사진이라는 장르가 자의든 타의든 기록성에 기반을 두어 왔음에 반해, 이 시리즈에서 작가는 다분히 ‘예술 사진’의 취향으로 옮겨왔다고 볼 수 있다. 사진가가 그림을 그리고 석고를 부어 형태를 뜨는 것은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록성에 기반한 사진 장르의 작가가 새로운 형상을 창출하는 미술적 기초 조형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역동성과 적극성, 자유로움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예술 사진’이란, 사진이 예술로 자리 잡은 이래 어제오늘의 개념은 아니긴 하지만, ‘예술 사진’을 추구하는 그의 집요한 문제의식과 실천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Photogenic Drawing plants》시리즈는 총 42점의 식물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마치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의《백과전서》처럼, 새로움 그리고 과학적 탐구욕을 느끼게 한다. 세밀하게 묘사된 백과전서의 그림과 같이, 식물의 잔뿌리의 디테일까지 카메라로 담아낸 하이퍼 리얼리즘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표현은, 작가가 지금껏 이미지의 퀄리티에 집착해 온 사진적 반성의 연속이자, 더 나아가 기록성을 뛰어넘은 예술 사진으로서의 조형을 추구하고 실천하려는 작가의 적극성, 실험 정신을 강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이 식물 시리즈를 통해, 탈보트가 자신이 발명한 근대 사진술에 대하여 애초에 품었던, 재현으로서의 회화적 욕망을 똑똑히 형상화하면서, 그러나 그것이 순진한 환상에 불과했다는 자신의 냉담한 관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미약한 생명을 대표하는 식물들이 콘크리트 폼의 형태 또는 물속에서 부유하지만 결국 이미지로서만 남게 된다는 이 작품들의 결론은, 사진 작품이란 화석화의 결과물이라는 작가의 관점,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사진사적 맥락에 등장한 여러 가지 재료들을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킨다. 굳어진 백시멘트가 만든 화석, 채색된 예술, 찍혀진 기록 등 다양한 사진적 생각들을 기계적 이미지 속에서 돌아보는 가운데 자기 예술의 지향점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대표작 『매지컬 리얼리티』(Magical Reality)에서, 세상이 자신에게 가할지 모르는 조롱을 감수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존재감을 상정하는 시각적 스펙터클을 만들었다면, 이번의 식물 시리즈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미래지향적 글쓰기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매지컬 리얼리티를 ‘속임수’의 이미지라 했는데, 속인다는 것은 결국 이미지화, 즉, 허상, 마술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마술인 줄 알면서도 속아주는 현실들, 그래서 그저 재미있을 뿐인 공허함으로 귀결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찍었다고 했다. 사진은 진실의 기록이 아니라, 과거의 일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이용한 속임수의 기록, 즉 이미지, 마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제 작가는 기계가 만든 유일한 이미지인 사진을 제어하는 기술에서 경험으로 옮겨간 느낌이다. ‘경험이 지식을 이긴다’고 했던가? 드로잉을 하는 사진가, 작업실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열심히 만드는 사진가, 앞으로 흔히 볼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plants' 가 부디 구조적인 백과전서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