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ON, KI-SOO

4 SEASONS

Feb 12 - 29, 2008

박여숙화랑은 2월  KWON, KI-SOO 개인展 '4 SEASONS'을 개최한다.

송신자가 목표한 의미 작용이 수신자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커뮤니케이션은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커뮤니케이션에도 의미 작용은 역시 일어난다. 이것은 기호가 단일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며 다의성을 띌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상징으로 표시되는 기호는 본질적으로 다의적이며, 따라서 다의적인 기호를 매개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실패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권기수의 '동구리'라는 기표signifiant는 이러한 의사소통에 대응하여 롤랑 바르트Roland Gerard Barthes의 외시denotation(동구리가 직접 지시하는 대상)와 공시connotation(동구리에 주어진 또 다른 내재적 의미)로 관객과의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언듯 보기에 가벼워 보이면서도 치밀한 구성과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확성은 관객들에게 서로 다른 해석의 여지를 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권기수의 동구리가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하지 않는 이유는 철저하게 동양적인 사고방식에서 시작된 기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구리는 각기 사람마다 주관적 해석에 따른 유추가 가능하며, 그것에 따라 계속해서 확장해가는 새로운 기의들이 존재한다. 월전미술관의 학예연구원인 류철하의 해석에 의하면 권기수의 작품에 등장하는 기호화된 이미지는 억합된 힘, 관계 그리고 사회적 위치의 자각에서 나오는 폭력성을 잠재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칼, 총, 몽둥이가 잠재적 폭력성이라면 꽃은 화합, 협력, 융화하려는 의지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 디렉터인 김기용은 「기호 이미지와 심미적 재현」에서 권기수의 기호이미지는 의미의 우연성과 텅빔을, 대상의 실종과 주체의 실종을 상기시킨다고 하였다. 이렇게 동구리의 미소가 폭력성이나 주체의 상실로 해석되는 이유는 1998년 관훈 갤러리에서 그의 첫 개인전인 The Show의 작업 때문이라 보여진다. 검은 복장을 한 인물들의 군상은 사회의 억압과 정체성의 혼란에 대한 표현방법이기 때문이다. 초창기 동구리의 이미지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웃고는 있지만 드로잉의 붓터치가 괴기스러움과 속도감으로 인해 음울함을 나타내고 있다. 당시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심도 깊은 생각으로 많은 것을 연구하고 있었던 권기수의 작업은 현재의 작업으로 발전했다.

 

동구리의 웃고 있는 미소는 한국 특유의 고졸한 미소를 띈 온화한 표정을 의미한다. 특히 빛의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한국 불상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한국 불상은 위엄있는 중국이나 아기자기한 일본의 것과는 다른 관조적이면서도 희미한 미소가 있다. 이러한 미묘하면서 고졸한 미소를 차용하면서‘귀엽다. 장난스럽다.’를 벗어난 사람에 대한 대명사이자 심볼로써 만들었다. 권기수는“미국식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과는 다른 맥락에서 의미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부처는 옅은 웃는 미소를 지니며 인자한 보살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동구리의 미소는 하나의 한국적 기표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발전은 더 이상 앞서 해석되었던 폭력성이나 주체의 상실로써 해석되기는 힘들다. 한국이라는 집단의 사회적 억압에 얽매인 것이 아닌 세계적 흐름 중 동양이라는 문화 자체를 파악하려 하기 때문이다. 권기수는“기호가 학문화 된 것은 서양이지만, 동양은 고대부터 문자 자체가 하나의 기호를 축약한 상형문자이므로 훨씬 발전되어 있다. 예를 들면 계자원 화집과 같은 도상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 놓은 기호는 서양에서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며 철저하게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것에 대한 탐구를 한다. 극동아시아에서 재현은 얼마만큼 잘 되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면 표현력을 얼마만큼 담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가 중요했기 때문에 사의적(寫意的)인 요소가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한 점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자 권기수는 동양화의 사군자인 매난국죽에서 시작된 도상은 단순화 과정을 거쳐 하나의 기호로 만들어져 매화를 뜻하는 꽃, 대나무는 여러 가지 색의 긴 막대모양으로 표상한다.

 

이렇게 동양사상에 대한 정신적 탐구가 그 깊이를 더하게 된 요인 중 하나는 아크릴이라는 서양화적 물질이라고 본다. 그는 서양화의 물질로 동양화를 표현하는 작가로 초기에는 동양화단의 이단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서 어떤 재료나 물질을 사용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실크스크린의 기법을 응용한다거나, 바니쉬라는 서양의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이 그의 사상을 대변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더욱 정신적으로 작품에 다가가려 노력한다. 실크스크린이라는 밑 작업 이후, 덧칠을 10번 이상 하면서 철저하게 색감을 구분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리는 그의 작업은 중첩의 의미를 가진다. 수묵화의 먹이라는 재료에서 아크릴이라는 변화는 같은 검정색임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의 대명사로 대부분의 동구리를 검은 색으로 그린다. 이러한 정신적 교감으로의 승화된 작품은 결국 인간의 속세적인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상태를 나타내고자 하며 그것은 불교적 용어의 해탈의 상태와 같다.  이렇게 한국 사회적 상황에서 동양사상 전체를 살펴보는 폭넓은 시야로의 전환은 그의 정체성 문제에도 확실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코리안 팝, 한국의 팝, K-pop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팝아트 계열의 작품들. 그 사이에서 권기수는 무분별한 수용보다는 한국적인 특징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우선 영국의 팝아트가 사회비판적 의도를 가지고 기존의 규범이나 관습에 대해 비판적이며 대중문화의 속성을 나타내고 있고, 미국의 팝아트가 반복적으로 묘사, 임의적인 색채 가미, 일상적인 생활 소재의 사용으로 순수고급예술의 엘리티시즘을 공격하는 것이 특징임을 인지했다. 권기수는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라는 이분법적, 위계적 구조를 파괴하는 측면에서 자신의 작품이 팝아트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팝아트라는 장르 안에서 뿌리에 대한 생각을 하며 매화, 대나무를 차용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동심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오색창연한 동양적 색채가 나오게 된다. 그렇지만 그는 그의 작품이 팝아트로만 해석이 되는 것이 싫어서 동구리가 캐릭터라는 용어로 쓰이는 것을 지양한다. 캐릭터상품을 연상하게 하는 대상물은 사실 대중적인 이미지 확보를 하면서 표현과 복제가 가능한 것으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그는 유일무이성의 부정과 오리지널리티 파괴라는 것이 미래지향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대신 동구리라는 고유 이미지를 내놓음으로써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연극에서 기초적으로 제공되는 성격을 배제하고‘배역이 아닌 배우처럼’연출을 하 듯, 작품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그는 현대 팝아트의 계보를 이으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한다.  이번 권기수 전시에서는 이러한 배경아래 자수 작업을 새롭게 선보인다. 생활 속의 이불이라는 의미는 한국적 일상생활을 의미하며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스킨쉽이라는 자연스럽게 스치는 느낌에 대한 표현이다. 특히 전시의 부제인 <4 seasons>와 연관해 계절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침대 매트+담요+홑겹이라는 형식이 많이 들어간 것을 생각하며 수공예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캐릭터로 오인되곤 하는 동구리라는 작업과 마찬가지로, 이불과 자수라는 공예품적인 것을 작품으로 흡수시킴으로써 끝없는 매체에 대한 탐구심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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