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h, Dal-Jae 展

Mar 4 - 15, 2008

박여숙화랑은 3월  '허달재 개인展'을 개최한다.

직헌(直軒) 허달재(許達哉).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고종 28>∼1977)의 장손자이자 제자, 추사 김정희 로부터 시작한 남종(南宗) 문인화가(文人畵家), 허씨 가문의 명맥을 잇는 작가 등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말들 중 허달재, 그의 작업 자체를 이야기 해주는 것이 없었다.

초기에 그는 할아버지 의재 허백련의 화풍을 익히며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6살적부터 서예를 배우며 붓을 잡았던 그는 홍익대학교 재학시절 국전에 연속입상하며 경력을 쌓았다. 특히 1980년에서 1990년대 초의 작업에서 산수화나 사군자에서는 그 노력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그는 단순한 전수만 이루어져서는 대가의 길로 가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1983년부터 양식을 바꾸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선비의 격조 높은 정신을 바탕으로 한 회화의 소재로 구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을 지리산에서 할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잊혀 질 수 없는 몽롱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것이 간결하면서도 현대적인 해석을 곁들인 작품으로 나타났고 그것은 ‘운무화(雲霧畵)’라고 명명되었다. 이렇게 구름이라는 소재적 변화는 일어났지만 성긴 화면구성과 거칠면서도 강인한 건필의 구사는 여전했다.

대가들의 작품을 현대적인 조형언어로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둔 그는 연구적인 작업들을 하기 시작한다. 동양화를 그리면서도 먹과 물감을 흘리는 하며 추상적인 것을 가미한 작품부터 오리와 인간, 달, 새와 같은 소재들을 상형문자로 나타낸 것, ‘설(雪‘)’, ‘차(茶)’, ‘국(菊)’, ‘난(蘭)’, ‘매(梅)’, ‘자(字)’ 와 같은 글자와 그림을 엮는 작업등 실험적인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표현방법의 변화, 소재의 다양성이라는 시도는 뉴욕에서 먼저 인정을 받고 브룸 스트리트 갤러리Broom Street gallery나 뉴욕 갤러리Newyork Gallery, 록 갤러리RHOC gallery에서의 개인전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파리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에스프레스 피에르 가르뎅 미술관Espace pierre cardin Museum과 같은 곳에서 개인전을 했다. 이런 해외에서의 관심은 한국에 역수출되는 현상을 일으켰고, 그의 작업이 확연하게 인정받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현대 회화로써 문인화를 어떻게 계승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그의 기법이 하나의 틀로 완성되고 있었다. 직헌 허달재는 이러한 현대적인 시도로 소재를 벗어나며 문인화적인 정신의 계승에 초점을 맞추었다. 근대감각이 밴 음영법(陰影法)을 사용한 작품을 하는 한편 매화나 포도 씨리즈도 계속되고 있었다.

 

전시 작품 이번에는 맨드라미 그림이 여러 점 포함돼 있다. 소재 면에서 볼 때 그것은 기존의 문인화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통상 문인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는 매화와 난초, 국화, 대나무 등 사군자를 비롯하여 포도, 석류, 수박, 연꽃, 모란, 감 등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소재들은 예로부터 무수히 그려져 왔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기법이나 구도 따위의 선례가 많다. 다시 말해서 ‘패턴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맨드라미처럼 그 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소재는 작가 자신의 창의에 의해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이의 표현을 두고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특히 극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한 유화와 달리 붓과 먹, 그리고 비교적 단순한 채색 재료를 가지고 심의를 표현해야 하는 문인화에서는 더욱 그 어려움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허달재의 이번 전시는 새로운 소재를 개척한다는 의미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시 의미와 취지 설명 매화 그림이 꽃잎의 표현에 있어서 톤의 변화가 없이 쭉 고른 반면에 포도를 그린 그림은 특히 잎사귀를 농묵으로 처리하여 톤의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먹색은 청신하고 밝아 사의(寫意)를 잘 드러내고 있다. 포도나무 전체를 조감하듯이, 화면에 적절히 포치된 나무 가지 사이사이에 포도 알갱이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거기에 갈필로 그린 포도넝쿨은 거의 직선으로 처리되어 기존의 표현 관례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화면 전체를 수놓듯이 아롱지게 그리는 허달재의 이 독특한 화면 경영 방식은 세련된 미적 취미에서 온 것이다. 연한 계란색, 연한 베이지, 연한 푸른색, 연한 붉은색으로 칠해진 바탕 위에 포도와 매화를 그린 허달재의 그림은, 특히 붉은 홍매화를 그린 일부의 작품에 이르러 마치 한 폭의 추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대상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그것은 마치 종이 위에 붉은 꽃잎들이 후두둑 떨어져 있는 것처럼, 사실성은 멀어지고 추상성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매화 잎인가, 아니면 붉은 물감의 반점들 자체인가. 그의 그림은 이처럼 근본적인 미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근래에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맨드라미 그림이다. 녹색과 붉은색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이 연작은 허달재가 그린 기존의 문인화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가장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꽃잎에 대한 묘사에서 줄기와 잎사귀에 이르기까지 형사(形似)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이 연작에서 나타나고 있는 노란색 반점들은, 마치 반딧불이 어두운 밤하늘에 떠다니듯이 꽃과 잎사귀, 줄기에 퍼져 있는데, 이는 기존의 매화 그림에서 검정색 점들을 무수히 찍은 것과 같다. 이 반점들은, 마치 종이의 평면성을 증명하고자 한 것 같은 의도를 암시하는 것 같다. 그림에 표현된 대상과 무관해 보이는 듯한 이 점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것이다. 그것은 사실적 표현에 덧붙여짐으로써 이 연작들이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는 것에 그 목적과 뜻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표다. 현대성의 호흡이란(여기서 앞에 인용한 작가노트에서 보이듯이, 그가 호흡을 유달리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새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바로 오늘의 시점에서 문인화를 다시 보고자 하는 그의 의식에 새로움을 부여하는 직접적인 요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반점들은 맨드라미와 매화와 함께 각각 별도로 그린 투명지를 겹쳐 놓은 것처럼 독립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도는 기존의 문인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화면을 두 개의 화면이 오버랩된 것처럼 그린 선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맨드라미 그림은 채색화다. 거기에는 먹이 드러나 있지 않다. 녹색과 붉은색에 의한 농담(濃淡)의 조절로 이루어진 이 연작은 오랜 기간에 걸쳐 숙련된 테크닉의 소산이다. 적절히 포치된 꽃의 존재와 붉은 빛이 감도는 꽃을 받쳐주는 녹색 잎사귀의 대비는 작품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요인이다. 색의 농담이 자아내는 계조(gradation)는 동양화의 채색 물감만이 가능한 독자적인 기법이다. 채색 물감이 종이에 흡수되면서 어루만지듯이 부드럽게 서로를 흡수하는데, 농과 담의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고 붓질의 교차가 만드는 섬세한 겹침의 효과가 나타난다.

안정된 구도는 허달재의 그림이 지닌 특징 가운데 하나다. 어느 것을 그리든 그가 그려내는 그림은 안정감이 있다. 그것은 타고난 그의 감각으로부터 온다. 구도와 관련된 그의 실험은 맨드라미보다는 매화 그림에서 더욱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의 매화 그림은, 특히 홍매를 그린 일련의 연작이 눈여겨 볼 만한데, 마치 줄기는 증발하고 꽃잎만 난무하는 것처럼 추상적으로 표현돼 있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남종화의 오랜 전통에서 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러한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적 관점에서 오늘의 감각에 맞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것의 일환이 바로 반점의 도입과 균질적인(all-over) 구도의 사용인 것이다. 그의 그림은 ‘단순과 복잡’의 사이를 왕래하는 진자와도 같다. 그의 그림은 제한된 색채지만 풍부한 효과를 낳는다. 그의 그림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는 시각적 잔치를 베푼다. 허달재는 최근 몇 년 간 매화와 포도를 소재로 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그려왔다. 그리고 거기에서 많은 회화적 실험이 시도되었다. 정통 남종문인화의 화맥을 잇는 그의 작업은 이러한 실험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수성에 부응한 작품들을 통해 거듭 태어난다. 이른바 ‘신남종화’의 탄생인 것이다.

 

평론가 해석 50대 중반의 직헌은 그의 너털웃음처럼 느긋하고 소탈한 여유를 화선지에 억지스럽지 않게 적셔내고 있는 것 같다. 비로소 할아버지 의재 허백련의 인간미와 남화정신을 계승한 면모가 그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현대적 감성의 선미(禪味)와 치장미(治粧美)로 새롭게 재창조해낸 것이다. 할아버지가 지녔던 다선(茶仙)의 풍모에 주신(酒神)의 경지를 보태어 남화정신을 그렇게 표출하였을까. (중략) 직헌다운 감성과 선미(禪味)의 ‘직관’은 깔끔한 수묵사군자나 화훼(花卉) 그림으로 우려낸 것 같다. (중략) 직헌의 요즈음 회화관은 ‘성외성(聲外聲)’과 ‘정중동(靜中動)’을 지향하는 것 같다. 소리 밖 소리의 묵음(黙音)과 고요 속에 흐르는 유동(流動)은 할아버지 의도인(毅道人)이 추구한 ‘숙이생(熟以生)’, 곧 ‘무르익음이 날것처럼 어리숙해지는’ 경지의 질박함으로 흐르게 될까. 아니면 할아버지 의도인을 초극한 성숙으로 나아갈까. 우선은 맑고 담담한 직헌의 마음이 ‘직관과 적공’의 조화로운 예술세계와 더욱 상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태호, 直軒 許達哉의 新 南畵風, 聲外聲․靜中動의 禪味와 治粧美, 박여숙 화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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