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따러가자

Sep 4 - 23, 2008

박여숙화랑은 9월 단체전 '사과따러가자'展을 개최한다.

음식에 대한 여러 단상.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의 총칭인 음식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엮어 3가지 방을 만들어 전시를 기획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음식이라는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그것을 그리는 소재로 선택을 하며, 같은 소재라고 해도 집중하는 부분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작가적 시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사과’라고 하는 하나의 명사를 사용하여 지칭하면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모든 사과는 똑같이 생기지 않았지만 그 실재를 대체물들로 전환시켜 하나로 통일시킨 대명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9명의 젊은 작가들이 각자 3~4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1. 음식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

이예진(B.1984)은 '현실'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메탈에 투영된 음식을 그린다. 아크릴작업으로 메탈에 비쳐져 본래 이미지가 변형되는 것을 원본과 같이 그림으로써 본영 이미지와 왜곡된 이미지가 공존하는 물체에 대한 자각을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과일은 개별적 사람을 나타내는 것으로 제 3자를 뜻하고 있다. 김준식(B.1980)은 우리가 먹는 음식은 소비되어지는 것이며 그것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실제 하는 것들이 사라진다고 한다. 반 하이퍼리얼리즘 작가로 어떤 것이 사진, 실물이고 어떤 것이 유화인지 그 구분이 모호하도록 두가지가 공존되도록 작품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소비되어지는 것이며 그것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실제 하는 것들이 사라진다. 그 실체를 분해하며 흡수되는 과정을 돌이켜볼 때, 우리는 의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과 그림, 그 둘은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 놓은 것 일 뿐, 실제 그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정민(B.1971)의 작품 ‘두개의 우울’에서 접시에 담겨있는 두개의 햄버거는 폭식과 거식의 중간상태에서 생성되는 우울성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아크릴과 먹이라는 서양적 소재와 동양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작품 활동을 했고, 작품의 주제인 '빈지-퍼지 신드롬'은 '이상식욕항진증'을 나타내는 의학용어로 존재론적인 배고픔과 초월의 의지를 상징하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2. 인간의 기본적 욕망의 표현

박소연(B.1985)은 달콤한 에너지, 단 음식에 대한 욕망을 나타내려 하며 아이스크림을 그린다. 아크릴 작업으로 음식물의 소비에 대해 논의하면서 기존 하이퍼리얼리즘과 다른 가상공간을 연출해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김진욱(B.1980)은 유화작업, 비빔밥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한국적인 소재를 확대 변형하고자 한다. 오방색, 단청과도 연관되는 색을 주로 사용하며 재료들의 특성을 추상화 시키는 방법으로 발전도 하고 있다. 초점이 맞추어 지는 곳 외의 장면의 초점을 흐리는 작업, 확대나 변형을 통해 낯설게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유용상(B.1973)은 와인잔에 와인이 담기고, 그 잔이 흔들리다가 비워지는 과정을 통해 의식의 흐름을 나타낸다.

 

3. 음식물의 변형

윤진영(B.1969)의 작업에서 음식의 변형은 음식과 생명의 모호한 경계에 천착함으로 이루어진다. 사진작업으로 먹는 '묵'으로 얼굴형상을 뜨고 음식의 변형과 죽음을 통해 삶과 궁극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죽음을 생각한다. 작가 윤진영은 'eat'라는 삶의 죽음과 탄생을 연상하게 하는 원초적 순환의 명제를 'food'의 본능적 취향원리에 의해 제시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음식을 먹는다’의 사실적 근거 아래 인간적 탐욕의 본능적인 딜레마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at+food'는 인간에게 있어 존재적인 이유의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내고 있다. 사진작가인 구성연(B.1970)은 팝콘씨리즈로 유명하다. 음식물에 유리를 꽂아서 작품을 만들며 음식물에 대한 변형으로 도시인의 삶속에서 상처받는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다. 홍정표(B.1976)는 삶으로부터 길어 올려진 예술, 삶과 구별되지 않는 예술, 레디메이드와 다를 바 없는 오브제와 함께 마침내 ‘예술은 어디에나 있다’는 편재성의 논리를 만들어낸다. 조각작가로 예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의미로 실재와 예술적 조작 속에서 작품의 의미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