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숙화랑은 10월 10일부터 11월 11일까지 권대섭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는 권대섭이 걸어온 백자 제작 40년의 시간을 결산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이 보는 이의 시각에 달린 것이라고 한다면, 한국 도예가 권대섭(1952-)의 백자 항아리는 많은 도자기 애호가들의 눈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흙을 구워 만든 단순하고 하얗게 빛나는 커다란 구체, 백자 항아리는 한국적 정체성의 상징이다. 이 기념비적인 백자를 흙에서 창조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고매한 사명이다. 권대섭 이전에도 수많은 이름 없는 도예가들이 반복적이고 고된 육체 노동을 통해 흙, 물, 불에서 시작하여 단단하게 구운 질그릇을 탄생시켰다.  

 

권대섭은 도자기 중에서도 백자 항아리를 선택했다. 전통 방식과 재료를 사용하여 흙을 만들어 형을 빚고 광택을 내고 굽고, 그리하여 섬세하고도 개성 넘치는 백자 항아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모험이자 사명이 되었다. 높이가 45cm를 넘기기도 하는 이 강건한 항아리는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 중에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특별한 한국의 도자기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백자 항아리 작업은 점토를 물레에 돌리고 가마 속에서 형태를 잡는 기술과 더불어 고된 육체적 노력을 요한다. 그는 영혼이 깃든 그릇, 즉 색의 미세한 변화, 불순물이나 가마의 먼지로 생기는 아주 작은 점들, 그리하여 각각의 것이 고유한 특성을 보이는 그릇을 만들겠다는 열망을 좆는다. 권대섭의 내력과 작품의 이미지를 통하여 도예의 세계의 발을 들이는 우리는, 그가 요구하는 헌신과 기술적으로 완성된 최고의 기량을 경험해볼 수 있다. 

 

백자 항아리에 대한 권대섭의 열정은 학생 시절 서울의 한 골동품 점에서 맞닥뜨린 조선 항아리에 매료되며 시작되었다. 홍익대학교에서 전공하던 서양화를 버리고 도예가가 되었다. 광주의 황폐해진 가마 유적에 대한 호기심을 따라 그 옛날 도공들이 폐기했을 파편(사금파리)을 모으고 연구했으며, 한국의 도자기 역사와 백자 항아리의 형태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1590년대의 전쟁 이후 조선의 도공들이 그 땅에 도자기 제작 기술을 전파한 이야기를 추적하였다. 권대섭은 광주의 가마와 작업장을 직접 만들었고 수년 간의 집중과 노력 끝에 1995년 자신의 작품을 세계에 내보인다. 진흙 한 덩이를 물레에 얹고 발로 물레를 돌린다. 앞서 언급했듯 두 조각이 만나 커다란 구체를 이룬다. 높이가 50cm에 이르는 백자 항아리도 있다. 각각 반구 형태를 유지하면서 한쪽에는 단단한 바닥면이 있고 다른 하나에는 주둥이가 있는 두 덩어리가 하나의 거대한 항아리의 형태를 이루기 전에 우선, 반드시 반쯤 마른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의 몸체로 작업하면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둘로 나누어 만드는 덕분에 각각이 약간 마를 수 있게 된다. 조붓한 바닥, 조심스럽게 비례를 맞춘 주둥이, 넉넉한 허리선 모두 자리를 잡아 항아리의 모양이 된다. 이후 과정에서 진흙이 일정하지 않게 구워지면서 형태가 약간 변형되는데, 불순물의 함유 정도나 가마 안의 온도와 압력의 변화 또한 이에 영향을 미친다. 백자 항아리는 두 번 굽는다. 유약을 도포하기 전의 초벌은 섭씨 850도 정도에서 10-12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이 끝나고 아직 미세한 구멍이 많이 있는 상태의 도자기에 유약을 발라 한 번 더 굽는다. 유약 칠이란 항아리에 실리카와 알루미나로 만든 액체를 씌우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때 유약이 흙에 남아 있는 다른 물질과 반응하여 색이 결정된다. 재벌은 24시간 정도가 걸릴 수도 있으며 그 동안 가마의 온도와 산소 농도를 가까이서 조절하여 작가가 원하는 색을 낸다. 권대섭은 이를 ‘자연의 도움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재벌 후에 가마가 식으면 완성된 항아리를 꺼낼 준비를 한다. 불침투성의 이 항아리들은 두드렸을 때 공명음을 내는 진정한 고연소 도자기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대섭은 거의 기대에 미치지 않는 항아리를 버리는데 주저함이 없다.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부수어 버린다.’ 그가 말한다. ‘좋은 작품을 가마에서 꺼낼 때는 즐거움을 느끼고 말을 거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보통 1년에 겨우 6점의 백자 항아리를 완성작으로 빚어 낸다고 한다. 

 

한결같이 고된 권대섭의 작업은 엄밀하고도 표상을 초월하며 무엇보다 흙, 바람, 불의 요소들과 같은 근본적인 힘과 깊고 정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완전한 전통 방식의 도예가로서 조선 도예의 심장부였던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 도예에 대한 사랑에 고무되어 택한 필생의 작업. 그러나 어쩌면 훗날 세계 각지의 다른 예술가들과의 만남이 권대섭의 세상에 흔적을 남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달이 지구를 돌며 감동을 남기고 있는 것처럼. 

 

권대섭은 2018년과 2015년에 벨기에 안트워프의 악셀 베르보르트에서 백자 항아리 개인전을 가진 바 있고, 곧 그의 개인 작품집이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에서 출판된다. 2018년 10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그의 달항아리가 52,500 파운드에 낙찰, 약 9천 7백만원에 달하는 금액의 성과를 보이기도 하였다. 국내에선, 박여숙화랑을 통해 2017년 한국민속박물관의 <봄놀이 – 산, 꽃, 밥>,  공예 트렌드페어, 키아프 등 국내의 여러 전시와 아트페어에서 그의 백자 시리즈를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도쿄 긴자 6의 클럽 갤러리의<Matsuyoi: between Imperfection and Perfection>, 2016년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민족박물관과 2015년 프랑스 파리의 장식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 Korea Now! Korean Crafts & Design in Munich> 등에서 전시한 이력이 있다. 그의 백자 시리즈는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멕시코의 멕시코 국립 박물관, 러시아 국립 박물관, 방글라데시 국립 박물관과 한국의 삼성 리움 미술관, 호림박물관, 민속박물관 등에 소장되어있다.  

press release

Oct 10 - Nov 11, 2019

Kwon Dae Sup

Solo Exhibition